의식의 흐름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요한 암 병동에서 쓰는 글 고요한 암 병동에서 고집스러운 가면을 낀 할아버지가 홀로 이리저리 쾅쾅 대며 들어와 앉더니 대뜸 유튜브를 큰소리로 틀어대더군요 처음에는 뭔가 싶어서 모두 고개를 획 돌렸는데 그분은 오히려 당당한 얼굴로 주변을 쓱 돌아봤어요. 시간이 지나도 그분 곁에만 보호자가 없었고 주변에서 위로와 안정의 말들이 오고 갈때 그분은 필사적으로 휴대폰이랑 눈을 맞추더군요 약 기운이 퍼지고 고통에 몸부림 칠때마다 가면에 조금씩 금이 갔고 꼭꼭 숨겨왔던 민낯은 누구보다 외롭고 괴로운 얼굴이었어요 그 모습을 마주하니 그저 진상 같았던 아까의 행동들이 필사의 발버둥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옷가지들에선 돈냄새가 풀풀 풍겼었는데 죽음 앞에서 홀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니 주변사람의 고마움을 잊지않고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 더보기 삼류소설 가정사 보통 사연없는 집은 없으니 가정사는 70억개쯤 있겠지 싶다 문득, 시간에 떠밀려 잊을수도 있으니 삼류짜리 가정사라도 기록해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잊으면 없던일이 될까봐. 먼저 떠오른 기억은 초등학생 때, 어떤 시험날이었던거같다. 일찍 끝나서 방방뛰며 집오는 기쁨도 잠시. 현관문을 열었더니 온갖 집기들이 깨지고 쓰러지고 파편들이 휘날렸다 날카로운 고성 찢어죽일 분노가 가득 담긴 욕설 무엇인가 깨부수는 소리,아픔을 처절하게 참는소리 안방에서 엄마는 침대에 숨못쉬게 머리가 쳐박힌 채 나랑 동생의 이름을 처절한 분노를 담아 찢겨지는 목소리로 부른다 그때 박힌 비수는 단 한순간도 잊혀지지도, 잊을수도 없다 언제는 아빠의 일방적인 폭력을 막으려고 저 멀리 시골에서 증조할머니가 오셨었다. 우리는 기댈수 있는 유일한 .. 더보기 노가다 현장에서 만난 인생의 첫번째 기회 군대 전역후 한달쯤이었다. 마땅히 취직도 안되고 밥만 축내는 식충이시절. 친구들 만날돈까지 떨어지자 알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엄마 지인이 손이 부족하다해서 노가다 비슷한 잡일을 시작했다. 정직원 옆에서 온갖 보조를 하는 막일이었는데 나 말고도 조선족 아저씨 한명, 탈북해서 넘어온 연변아저씨 한명이 팀이었다. 그 당시 오원춘 사건을 필두로 조선족과 연변 관련해서 좋지않은 사건이 끊임없이 나올때라 안좋은 감정이 팽배할 시기였다. 조선족 아저씨는 언론 분위기를 아는지 눈치를 엄청봤고, 연변아저씨는 세상 관심없다는 눈으로 일만 묵묵히 했다.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직접 본것만 진실이라고 믿자'는 주의여서 일하는 내내 편견없이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그러다 일이끝날쯤에 갑자기 조.. 더보기 이전 1 다음